다음맵 |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리 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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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군 보은읍에 위치한 해발 325m인 오정산(烏頂山)에 축조되어 있는 산성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자비마립간 13년(A.D.470)에 3년만에 축조하였다는 기록과 소지마립간 8년에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실려 있어 신라시대 산성으로 축성연대가 확실한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삼년산성은 성벽이 매우 양호한 상태로 잔존하고 있어 5세기 후반 신라의 축조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하겠다. 현재 사적 제23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삼년산성의 평면은 장방형(長方形)에 가까운 형태를 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흐르는 계곡을 에워싸고 있는 포곡식산성이다. 체성(體城)은 모두 협축(夾築)에 의한 축조기법으로 구축하였는데, 성 둘레는 1,680m이다. 체성의 높이는 동벽에서 13-20m, 서벽과 북벽에서 10m이며, 북벽의 하부폭은 10.53m, 상부폭은 8m이며, 서벽의 하부폭은 11.2-11.5m, 남벽의 상부폭은 5m, 동벽의 상부폭은 5-7m를 나타내고 있다.
체성은 높이 12-20㎝, 마구리의 장변(長邊) 40-50㎝, 뒷길이가 60㎝ 정도인 점판암(粘板岩)계통의 석재를 이용하여 가로 쌓기와 세로 쌓기를 교차(交叉)로 하여 ‘井’자식으로 축조하였다. 면석(面石)들은 서로 밀착되어 있으며 틈 사이에는 조그만 석편(石片)을 끼워 입면상 빈틈이 없고, 외벽의 상하 석재가 거의 비슷한 크기이다. 내벽은 외벽에 비해 조금 덜 정치(精緻)한데 내벽의 면석들이 외벽의 면석에 비해 두께가 약간 더 두껍고 형태도 장방형이 아닌 모가 없는 부정형의 자연석이 더 많이 섞여 있다.
이 산성에서는 산능선과 연결되는 지점에 7개소의 곡성(曲城)이 시설되었는데, 높이는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그 둘레는 대개 25m 정도이다.
삼년산성은 동문과 수구가 있는 동벽의 최저위부가 곡부로 되어 있는 부분, 그리고 남벽의 만곡된 최저위면 통과부에서 거의 동일한 보축이 지표상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 두 부분의 보축시설은 체성의 벽면 기울기보다 현저하게 완만한 기울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체성의 축조방법과는 큰 차이가 있는 석축방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들 두 부분에 있어서는 체성의 높이가 10m 이상인 외측으로 약 0.9-1.1m의 외환상태의 보축 상단면이 있고, 그 외측으로는 45˚에 가까운 보축이 되어 있다. 체성이 얇은 층을 이룬 수평적임에 반하여 이 보축부는 보다 면이 크고 석재 자체의 외면이 현저히 드러누운 상태의 돌을 쌓아서 만든 것이다. 예컨대 체성의 석재는 판상할석 형태이지만 보축부분의 석재는 석괴형태에 가까우며 반쯤 뉘여서 마치 덮은 듯이 쌓아 올린 모습이다.
이와는 달리 서쪽 성벽에 시설된 곡성(曲城)의 경우에는 경사각도가 다른 2중 내지 3중으로 보축이 마련되었다. 서북 곡성의 경우 성벽의 내측 선에서 곡성의 외측까지 너비는 16.2m이고, 그 바깥쪽으로 0.66m 나가서 1.7m 높이의 제1보축이 있으며, 그 아래에서 다시 3.5m 나가서 0.8m 높이의 제2보축이 5단 높이로 잔존하고 있다. 이곳의 특징은 가장 바깥쪽에 해당되는 제2보축의 기울기가 80˚쯤 되는 중앙부에서 서단으로 곡성의 하부를 에워싸면서 돌아간 남측은 아주 밋밋하게 제1보축의 윗면과 이어지도록 축조되었고, 제1보축은 70˚정도의 기울기로, 그리고 체성은 80˚정도의 기울기로 되어 제1보축의 상단면은 환도상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곡성부가 아닌 서벽의 많은 부분은 체성의 외측으로 0.7-0.8m 쯤 나아가 보축성벽이 있고, 그 기울기는 체성이 80˚이상임에 반하여 보축부의 기울기는 60˚에 불과하다. 보축부의 외하면은 보다 성글고 큰 할석(割石)을 점토와 다져서 기단처럼 만들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조사위치에 따라 보축부의 상태가 다른데, 특히 한 부분에서는 제1보축의 외하(外下)에 수직벽이 있고, 그로부터 다시 외하부에 제1보축보다 경사각이 수직에 가까운 부분이 있어서 2중의 기단처럼 형성된 부분도 있다.
이와 같이 삼년산성에는 체성의 바깥으로 보축이 1-3중으로 구축되어 있는데, 그 목적은 지형상의 약점을 보완한다는 측면도 있으나, 성상(城上)에서 성하(城下)에 바싹 다가선 적을 공격하기 쉽도록 배려된 일면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벽이 산의 외향 경사면에 축조될 때 보축을 기단처럼 만들어 놓고 체성을 축조함으로써 보다 견고함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는 석축도 있다.
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체성보다 현저히 경사를 완만히 하였고, 축석의 방법이 비스듬히 덮은 양상으로 보이도록 고려된 점에서 시기를 달리하여 보축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체성의 보수흔이 남아 있는 동북 곡성의 외면은 당초의 성석(城石)에 비하면 면의 횡에 비하여 종이 보다 넓어진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기준하면, 석재구성에 있어서 1차적인 축성은 매우 횡장(橫長)한 외면을 가진 석축으로부터 점차 넓은 면을 가지는 석재로 변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문지에서는 윗면에 폭 1.66m의 수레바퀴 흔적이 있는 문지방돌이 확인되었다. 동벽에는 수구(水口)가 시설되었는데, 출수구(出水口)는 지상에서 약 1m 정도의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고 모양은 5각형으로 가로 0.63m, 세로 0.43m 정도의 크기이다. 또한 바깥쪽 출구의 밑바닥 돌이 성벽보다 0.15m 정도 돌출되어 있어 떨어지는 물이 성벽을 타고 흘러 내리지 않고 직접 땅바닥으로 떨어지게 하였고, 땅 바닥에는 돌을 깔아 흙이 패이는 것을 방지하였다. 그 외에 서벽내에 계곡을 이용하여 집수시설(集水施設)을 조성한 남북 42m, 동서 45m 규모의 연못지와 건물지 그리고 우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년산성 [報恩 三年山城] (고고학사전, 2001.12, 국립문화재연구소)
박태홍은 이 사이트를 2001년 부터 운영해온 운영자이며,
또한 건축가이자 교육자로서,
현재 건축연구소.유토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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