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라이터를 팔며 구걸하는 거지인 현대판 성냥팔이 소녀는 세상에 치이고 소외당한 10대 여중생을 은유한다.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유명한 아이돌 가수인 가준오라는 설정이나 간간이 등장하는, 원조교제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은 확실히 현재 10대 여중생의 현실과 심성에 닿아있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사회현실을 바탕으로 재생된 게임속 캐릭터 성소녀는 라이터의 가스를 마시면서 죽게되는 자신의 운명을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후에 '주'에 의해 발생된 버그에 의해 무기를 소지하게 된 성소녀는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른다. 지하철, 골목길, 주차장 등의 모든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도시인들은 라이터를 사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다. 살인행위는 위선적인 사회에 대한 소녀의 분노의 표출인데, 여자들이 천사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노동을 하는 사이비 종교단체를 침입하여, 날개달린 동상밑에서 기도하는 교주를 사살하는 성소녀의 행동은 약간 의문스럽다. 과연 성소녀가 어떤 이유에서 위선적인 악한 사회의 중심을 사이비 종교로 보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감독은 원전에서의, 성소녀가 거리에서 죽어서 천사가 되어 하늘나라로 날아가는 결말을 단호히 거부하는 성소녀의 현재 심경을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천사 이미지를 전면에 등장시켰을 경우에 파생될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반발을 염두에 둔 듯한 설정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은유들이 영화전체의 큰 맥락과는 또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도 확실치가 않다. 가볍게 시작된 영화는 사회를 비판하는 듯 하다가 갑작스럽게 다시 가벼운 게임의 세계로 관객들을 빠뜨리고,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담아 내겠다는 과도한 욕심으로 뒤범벅이 되어있어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느끼는 대로 보라는 식의 황당함이 깔려있다. 영화속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모든 폭력신은 홍콩영화를 보듯이 그저 무감각하고 가볍게 묘사되는데, 자주 남발하는 와이어 액션신이나 강렬한 색채를 넣은 cg의 사용은 너무 노골적이다. 액션을 받쳐주고 있는 배경공간은 확연하게 꾸며놓은 듯한 느낌이 나타나 액션 시퀀스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을 또한 방해한다. 그나마 비폭력적인 이미지의 성소녀가 -오우삼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ave maria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가운데- 기관총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은 매우 정적이면서도 강하게 관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순식간에 뒤바뀌고 경계는 모호해지며, 평범한 일상의 공간은 폭력에 의해 정지되어 남겨진 공간으로 의미가 전이되는, 신선한 연출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외의 장면들은 스타일과 기교에 과도하게 집착한 나머지 맥을 찾지 못하고 제각기 떨어져 부유하고 말았다.
영화 [성소녀]는 리니지,스타크래프트와 같은 네트워크 게임에 익숙한 사이버세대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기획된 상업영화다. 하지만 컴퓨터 게임은 영화와 달리 관객의 손을 통하여 직접 참여가 가능한 인터액티브한 장르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의 남자주인공 '주'는 영화속 주인공이 바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 자신임을 강요하고 있지만, 단지 메뉴와 설명이 화면에 덧붙여지는 기교적인 디스플레이 화면이나 간간이 나타나는 1인칭 시점의 액션 장면만으로 관객이 영화속 세계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리라고 감독이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영화는 자신이 매우 새로운 영화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관객은 이와 비슷한 류의 영화를 알게 모르게 상당히 많이 보아왔다. 가상현실의 개념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대에 등장했던 total recall은 당시의 영화소재 자체의 신선함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작용하였으며, the 5th element의 경우 상상을 불허하는 도발적이고 독특한 캐릭터들의 풍부함이 영화공간 전부를 채우고 있다. matrix는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영화 [성소녀]도 물론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호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개를 위해 재미삼아 적당히 넘나들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영화는 굳이 어디까지가 가상이고 현실인지를 해석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적당히 관객은 이게 지금 게임이구나, 지금 이건 현실이구나를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그러한 인식의 반복이 감독의 기존 영화스타일처럼 불규칙적이고 영화의 전개상 강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필름을 여기저기 짜집어놓은 것처럼 어설프다는 데에 있다. 영화 [성소녀]의 캐릭터도 물론 다양하지만, 캐릭터들은 강렬하게 채색된 영화공간에 적절히 녹아들지 못한채 겉돌거나 또는 너무 튀어버렸고, 캐릭터 상호간의 부자연스러움은 극에 달하고 있으며, 정작 가장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야할 성소녀의 캐릭터는 튀는 조연들에 의해 완전히 눌려서 주인공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영화의 중심에 서지 못하면서 기대하였던 신비성이 상당부분 퇴색되어 버렸다.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성소녀는 과연 the 5th element의 릴루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엔딩신의 하얗게 채색된 열주공간, 신적 존재로 묘사된 시스템, 그리고 마지막 보스로서의 이 시스템을 파괴하는 방법이 사랑이라는 해답은 지극히 상투적이고 지루하다. 영화는 한편의 게임과 같지만, 게임에 익숙한 영상세대들에게 있어 이 영화는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다. 영상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영화속 환상은 그저 당연히 있을 법한 현실처럼 보이고, 현실적인 장면은 그다지 사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가상과 현실의 모호함은 인터넷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세태에 비추어 볼때 도리어 일상적이다.
영화속 게임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게임이 나온다면 그 게임을 직접 즐기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한 문화향유 행위가 아닐까. 영화의 소재가 가상현실 게임에 관한 것이라고 해서 극장에 걸리는 영화 자체가 게임 자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무리 관객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상업영화라고 해도, 영화는 다른 예술에 비해 색다르게 느껴지는 영화적인 그 무엇을 담고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또 그러한 영화적인 생각의 틀안에서 cg와 같은 첨단기술이 사용되어질때 비로소 영화는 영화다운 자신의 색깔을 견지할수 있을 것이다.
abcXYZ, 세종대왕,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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